제1기병사단 탄약열차를 이용한 ASP

 Combat Support in Korea (Captain John G. Westover, Combat Forces Press, 1955)는 관련 장교와 사병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550쪽에서 이동식 탄약 보급소 부분을 옮겼어요.

1) 움직이는 탄약보급소 (Mobile ASP)

제1기병사단 군수참모 월터 제르켄(Walter W. Gerken) 대령의 진술

625전쟁 당시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제1기병사단은 포항에 강습상륙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말이 강습상륙이지 1950년 7월 18일 아무런 저항 없이 포항에 도착했다.

일본을 출발하기 전 한국에 상륙한 뒤 최소 30일치 군수지원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한국은 30일분의 군수품을 옮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단 탄약 장교 찰스 러셀(Charles Russell) 대위는 155mm와 105mm 곡사포 탄약을 기본휴대량(basic load)의 2배, 5배 최소치만 가져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같은 지침은 미 육군 탄약관리지침에도 어긋나며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다.

사단 탄약장교의 임무는 사단 내에서 탄약을 할당하는 것이지 직접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사단 보병과 포병은 사단탄약장교(DAO)가 육군 탄약고를 찾아가 탄약을 인수해 달라는 요청을 철회했다.

이럴 경우 사단 군수중대가 탄약을 옮겨야 한다.

예비부품의 경우 우리는 가장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최대한 갖췄다.

정비트럭 내부가 꽉 차 있었고 M24 전차의 트레일러에도 예비부품을 적재했다.

더 이상 탄약을 실을 공간이 없어 보였지만 DAO 러셀 대위는 수송선 구석구석에 적재했다.

포항 독에서 제1기병사단 G4와 미8군 G4가 만나 협력했다.

미8군 G4는 한국의 요구사항을 듣고 한국은 군수품을 운반하기 위해 기관차 2량, 화차 25량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포항에 철도 수송대가 없었기 때문에 러셀 대위가 그 임무를 수행했다.

포항에 상륙한 1기병 사단은 대전에서 탈락하고 후퇴 중의 24사단을 구원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서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사단의 모든 차량은 육로를 이용하지만 탄약은 철로를 이용했다.

우리는 탄약열차를 전선에서 25마일 떨어진 안전지대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전선의 보병연대를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기관차 1량과 화차 5량으로 구성된 탄약열차를 편성해 전방으로 추진시켰고 이 열차 자체를 사단탄약보급소(ASP)로 결정했다.

지상에 탄약을 내리지 않고 움직이는 ASP를 만들었다.

영동군의 황강과 관리에 도착한 사단 포병은 전방 탄약열차 보급소 주변에 포대를 설치했다.

열차에 불과 100피트 떨어진 공무원들의 포대를 화차에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관리지역에 적의 포탄이 떨어졌지만 아군의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공포감을 느낀 한국인 기관사들은 기관차를 탄약화차와 분리시켜 이탈을 시도했다.

이들이 현장을 이탈해 출발하면 부산까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사단 탄약열차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총을 들이대고 그들을 열차 안에 가두었다.

전방 탄약열차 보급소 운영에는 이 같은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런 소동 뒤에 우리는 방식을 약간 바꾸었다.

탄약 열차를 두 대에서 세 대로 편성했다.

핵심 탄약열차는 후방 안전한 곳에 뒀고, 두 번째 탄약열차를 ASP에서 23마일 후방에 뒀다.

그리고 세 번째 탄약열차를 최전방 ASP로 추진시켰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미8군 수송담당 장교로부터 한국인 기관사와 엔지니어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질책을 들었다.

이 작전에 필요한 노동력은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골라 꼭 필요한 곳에 보냈다.

우리는 절실히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이 있었다.

우리는 항상 화차 하나에 쌀과 식량을 싣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세 끼를 배부르게 먹는 것으로 충분했다.

우리의 작전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사방에서 탄약을 확보했다 한국군은 서울과 부평의 아스콤(ASOM)을 포기하고 언제든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모두 실어 왔다.

후퇴한 24사단도 여러 종류의 탄약을 가져왔다.

24사단을 만났을 때 그들은 많은 탄약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또 25사단과 여타 부대로부터 예비 탄약을 넘겨받았다.

탄약을 다 챙기기 어렵다면 기꺼이 우리가 맡았다.

이렇게 수거한 탄약의 양은 화차 106대 분량이었다.

우리는 이를 대구 미8군에 넘겼다.

우리는 이동식 탄약열차를 운용하면서 탄약 한 발도 잃지 않았고, 열차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 같은 성공은 책상머리로 볼펜을 굴리기보다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DAO의 활약 덕분이다.

***아래 일련의 사진은 포항에 도착한 미1기병사단의 모습으로 충북 영동부근에 진출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