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식미투리

 미투리를 본다.

삼베 가죽 한 올, 머리 한 올을 묶어서 만들었다.

짚신보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여자가 멋을 부리고 아름답게 꾸미려면 머리가 아주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머리를 잘라 미투리로 만들다니 여자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가. 1998년 안동시 택지개별현장에서 발견된 무덤 속의 ‘원이 어머니의 편지와 미투리’에는 일찍 죽은 남편에 대한 슬픔과 남편에게 쏟는 모든 존경과 사랑, 정성과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다.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다짐한 남편을 너무 일찍 한 원화의 어머니. “혼자 사는 게 매우 힘들어”라고 말한 그녀의 애절한 슬픔이 편지에 녹아 있다.

가슴에 품은 두 상자를 입고 무덤 속까지에서도 따라갈 것 같은 여성의 모습을 보고혼자의 남편의 아내인 자신을 돌아본다.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사는 게 인생이어서 항구로 쉴 새 없이 서로의 그윽한 눈빛을 보면서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때로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삐죽 내밀어 콧등을 씰룩거리거나, 이마에 잔주름을 만들고 살지 않는가. 또 두 사람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같은 길을 가듯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침대를 좋아하는데 남편은 바닥을 좋아해서 김치를 먹어도 겉절이와 묵은 김치로 나뉜다.

나는 고속도로를 선호하지만 굳이 국도를 달리는 남편, 늘 똑같아 보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살다가 누가 한 명 먼저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싹할 때가 있다.

삶이 있으니 죽음은 당연하지만 애당초 삶과 죽음의 이치를 헤아리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날그날 삶에 맑은 날과 나쁜 날이 겹친다.

비 올까? 희미한 안개가 군상을 이루며 구름 꽃을 피운다.

하늘을 장식한다.

아름다움도 잠시 뒤엉키며 행복과 슬픔을 마술처럼 그려낸다.

산들바람 필 듯 먼 산에 먼지 군무가 서리다.

구름과 같은 바람꽃 샛바람과 하누이바람, 마파람과 하누이바람이 방향을 가리지 않고 무장한 꽃을 형상화한다.

금방 들렀다 사라지니 꿈꾸는 듯 아련하다.

얼음꽃은 어떨까. 자주 내린 나뭇가지에 지독한 서리를 맞으면 꽃을 만들다가 햇빛에 깜짝 놀라 형상을 바꾸는 결정체. 육각형 모양의 눈꽃 모양은 영원하지 않다.

삶과 죽음을 보는 듯 순간의 찰나에 운명을 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무진장한 인연으로 만난 남편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한 쪽이 먼저 죽으면 보고 싶다고 애타게 불러봐야 하늘의 메아리밖에 남지 않는데. 함께 걷던 길을 다시 가봤자 흙과 잡초만 무성하고 텅 빈 자리만 있을 것이다.

당장 피어 시들 틈도 주지 않는 구름꽃 바람꽃 얼음꽃을 멀리서 바라보며 더 늦기 전에 빛바랜 편지지에 사소한 말이라도 지어내야 한다.

할 말이 많아도 비난하지 말자. 마디마디 마디를 만든 말들을 새 고기가 나도록 다듬어야지. 나중에 튼튼한 나무로 자라도록. 서로 다른 의견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고받은 속담들이 무게 중심에서 흔들리더라도 은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가 두 사람의 얼굴에 가득 갈색 꽃이 필 무렵 꺼내 보아야 한다.

한 줄씩 밧줄을 꼬듯이 서로 의지하며 엮어야 할 여정이 남아 있다.

함께 가야 할 길에는 숨어 있는 복병이 많을 것이다.

배수진이라도 쳐야 하나. 사막의 모래처럼 풍덩 빠지는 길을 외면할 리 없다.

여기저기 돌이 촘촘히 나뒹굴거나 비틀거려도 내 손이 네 손이고, 내 발이 네 발이어야 길을 계속 갈 수 있다.

빗길과 눈길, 안갯길에 면해도 한 쌍의 미투리가 다른 길을 내딛지 못해 멈출 수가 없다.

날씨가 어떻든 단둘이 갈 뿐이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에 부치다.

인생의 박자를 휴모리 장단에 맞추기에는 숨이 가쁘다.

자진모리에게도 숨을 돌려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진양조로 가는 것은 너무 느리고 무겁지 않은가. 중모리장단에 맞춰 뚜벅뚜벅 나아가면 무리 없이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원엄마 미투리가 내 마음을 흔든다.

머리카락을 잘라 가장 소중한 것을 남편에게 건네준 한 여인의 고귀한 사랑을 회상하며 나머지 길을 생각해 본다.

죽음까지 함께 하기로 한 원화가 어머니의 경지에는 이르지 않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흉내 내며 남은 길을 다하고 싶어. 앞으로는 동행하는 남편을 위해 어떤 미투리를 만들어야 할까.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허리 빠진 눈썹 길들여진 미투리를 신고 험난한 길에도 벗지 못하도록 머리를 맞대봐야 한다.

그 옛날 사랑채 앞 돌 위에 놓인 할아버지의 미투리가 그리워진다.

백발의 남편과 내가 손을 잡고 눈 내리는 겨울 길을 가는 환영을 본다.